초등학교 시기부터 원어민 수업을 듣고 해외 연수 경험까지 갖춘 학생들 중에는 발음이 좋고 의사소통도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학부모 입장에서는 영어만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그러나 중학교 내신이나 고등학교 모의고사를 접하는 순간, 기대와 다른 성적표를 받아들고 당황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말하기는 능숙한데 정작 시험 지문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친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그 구조적인 원인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감각 중심 영어의 한계와 입시 영어가 요구하는 분석력의 차이
회화 중심의 영어 학습은 주로 상황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고 표현을 주고받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일상 대화에서는 문법이 완벽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이 과정에서 영어에 대한 감각은 빠르게 자라납니다. 하지만 입시 영어는 전혀 다른 기준을 요구합니다. 고등 내신과 수능 영어에서는 문장의 주어와 동사 관계, 시제, 수식 구조를 정확히 분석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대략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정답으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회화에서 길러진 감각에만 의존하게 되면, 지문을 꼼꼼하게 분석하기보다 아는 단어를 중심으로 내용을 대충 짐작해버리는 습관이 생기기 쉽습니다. 이는 입시 현장에서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아이들은 실제로는 틀린 해석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맞게 읽었다고 착각하는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가짜 독해' 습관은 고난도 문항으로 갈수록 여실히 드러납니다. 따라서 유창한 말하기 실력을 성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감각 위에 문법이라는 정교한 설계도를 얹어 지문을 해부하는 분석력을 반드시 길러야 합니다.
2. 일상어에 머문 어휘력의 한계와 학술적 문맥 파악의 중요성
영어 회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반복되는 고빈도 어휘들입니다. 일상적인 소통에는 큰 무리가 없지만, 중고등 영어 지문은 인문, 사회,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술적인 어휘를 포함합니다. 회화가 유창한 학생들이 정작 시험지를 받아들고 "단어는 쉬운 것 같은데 문장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단어라도 학술적인 문맥에서는 일상적인 대화와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상적인 의미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지문의 핵심 논리를 따라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어휘를 단순한 암기 대상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 의미가 유연하게 확장되는 구조로 이해하지 않으면, 회화 실력은 결코 성적으로 치환되지 않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단어 하나를 외워도 그 단어가 학술적 지문에서 어떤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는지 '구조화'해서 공부하라고 강조합니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한다면 아무리 영어를 유창하게 말해도 고차원적인 비문학 독해 지문의 벽을 넘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 저희 학원에 영어권 국가에서 6년 가까이 살다 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회화와 리스닝은 원어민 수준이었고 문제를 푸는 데도 큰 거부감이 없었지만, 모의고사 성적은 늘 2~3등급에 머물러 고민이 깊었죠. 제가 오답의 이유를 묻자 아이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게 답인 것 같아서 골랐어요"**라고 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해외파 학생들의 가장 큰 함정인 '근거 없는 직관'입니다. 입시 영어는 '감'이 아니라 지문 속에서 '논리적 근거'를 찾아내는 싸움입니다. 이 친구는 이후 구조화 학습을 통해 자신의 감을 논리적 확신으로 바꾸는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3. 말하기에 가려진 쓰기 능력의 공백과 등급을 가르는 서술형 평가
최근 학교 내신에서 성적을 가르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서술형 평가입니다. 회화에 익숙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데는 큰 부담이 없지만, 정해진 문법 기준에 맞춰 문장을 정확하게 써내는 데는 의외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술형 문항은 단순한 의미 전달이 아니라 '정확성'을 평가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철자, 문장 구조, 시제 중 하나만 틀려도 감점이 발생하며, 이는 곧 등급의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말하기 중심의 학습만 해온 학생들이 성적에서 불리해지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특히 지문 속 지칭어 관계나 문단 간의 논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점수를 대거 잃게 됩니다. 제가 강조하는 '지칭어 추론'과 '서술형 영작 훈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말하기라는 유창함 뒤에 가려진 '쓰기의 공백'을 정교한 문법 학습으로 메워야 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영어를 넘어, 손끝으로 완벽하게 증명해내는 훈련이 병행될 때 비로소 1등급이라는 확실한 결과를 손에 쥘 수 있습니다.
4. 회화는 목표가 아니라 도구입니다 : 학습 구조의 올바른 조정
영어 회화는 분명 중요한 학습 영역이자 훌륭한 자산입니다. 다만 회화 실력 자체가 자동으로 성적 향상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입시 영어에서는 회화를 통해 형성된 언어 감각 위에 문장 분석력, 독해 구조의 이해, 그리고 철저한 서술형 대비가 함께 쌓여야 합니다. 영어 성적이 정체되어 있다면 무작정 더 많이 말하는 것이 해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현재의 영어 사용 능력이 시험에서 요구하는 정교한 분석 능력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냉정하게 점검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언어로서의 영어와 평가 과목으로서의 영어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존재합니다. 이 간극을 이해하고 학습 구조를 전략적으로 조정할 때, 아이가 그동안 쌓아온 회화 실력은 비로소 강력한 성적의 무기로 변모할 수 있습니다. 공부 시간을 늘리기 전에 지금의 방향이 올바른지 점검해 보십시오.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우리 아이에게 부족한 '입시용 근육'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보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